깨달음을 경전 속에 가두지 마라!
지금, 여기,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법륜 스님의 새 책 <지금 여기, 깨어있기> 출간
부처님의 가르침, 선사들의 깨침의 순간, 그리고 이어지는 법륜 스님의 깨달음의 이야기
법륜 스님의 신간, <지금 여기, 깨어있기>는 참자유, 참행복을 찾으려면 삶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깨쳐야 한다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선사들과 이웃들, 법륜 스님의 수행담을 통해 친근하게 전한다.
즉문즉설로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길을 제시한 법륜 스님,
<지금 여기, 깨어있기>에서 살아있는 자신의 수행담을 들려준다!
2012년 국내 300회 강연뿐만 아니라 2014년 세계 100회 즉문즉설 강연을 통해 전 세계로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인생 고민을 직접 만난 법륜 스님. 진리의 길, 깨달음의 길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주는 새 책<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펴냈다. 특히, <지금 여기, 깨어있기>에서는 법륜 스님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깨달음의 순간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부처님의 삶, 선사들의 깨침의 이야기는 이제 법륜 스님 자신의 수행담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우리들 스스로가 깨달을 차례다.
“네가 누구냐?”, “왜 네 것이냐?” 물으면 우리는 대답을 못한다.
지금 이대로도 우리는 행복한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나는!’ 하고 살았지만 정작 “네가 누구냐?” 라고 물으면 우리는 대답을 못한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내 거야!’ 하고 살았는데 “왜 네 것이냐?” 라고 물으면 모른다.
우선 자기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점검하면 좋지만 어려우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고민거리가 대부분은 해결된다. 이제는 집중해서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어서 언제라도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인생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해탈, 열반이라고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맑으면 맑은 대로 좋고 추우면 추운 대로 좋고 더우면 더운 대로 좋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한다.
죽을 때까지 애써도 해결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깨닫고 나머지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법륜 스님은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길은 ‘자기의 문제를 자기가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라고 강조한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에서 법륜 스님은 자기가 단도직입으로 살핀다면 인생살이가 절대 복잡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수행해서 죽기 전에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하면 안 된다.
법륜法輪 스님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 운동가이자 제3세계를 지원하는 활동가이며 인류의 문명 전환을 실현해 가는 사상가, 깨어있는 수행자이다.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으로 한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했다.
법륜 스님의 법문은 쉽고 명쾌하다. 언제나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깨달음과 수행을 이야기 한다. 법륜 스님의 말과 글은 빙 돌려 말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근본을 직시한다. 밖을 향해 있는 우리의 시선을 안으로 돌이킨다. 어렵고 난해한 경전 역시 법륜 스님을 만나면 스님의 지혜와 직관, 통찰의 힘으로 살아 숨 쉬는 가르침이 된다.
스님은 일반 대중들과 함께하는 ‘즉문즉설卽問卽說’과 ‘행복학교’를 통해 괴로움이 없는 삶(행복)을 안내하고 있다. 특히 즉문즉설은 한국에서 1,200회가 넘게 진행되었고, 유튜브 채널의 동영상 누적 조회 수는 17억 뷰에 달한다(2022년, 4월 기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외국인 대상 즉문즉설을 포함해서 수십만 명의 대중과 온라인 즉문즉설로 만나고 있다.
한편, 개인의 수행과 사회 참여가 결코 둘이 아니라는 사상을 기초로, 한반도 평화통일과 난민 지원, 국제구호활동, 종교간 화해와 협력을 위한 다양한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고, 2020년 제37회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이대로 좋다』 『인간 붓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가 있다. 이외에도 젊은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스님의 주례사』 『법륜 스님의 행복』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현대인의 삶의 지침서 『인생수업』, 수행 지침서 『기도 : 내려놓기』, 교사들을 위한 『선생님의 마음공부』, 환경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생명의 강』,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는 『스님, 왜 통일을 해야 하나요』 『새로운 100년』 등 50여 권이 있다.
http://www.jungto.org
이영경은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1993년부터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신화따라 바다 여행』,『옛날옛적 이야기쟁이』,『꽃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등 지금까지 많은 책에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 여정을 살펴보면 작가가 특히 우리 옛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영경은 실제로 우리 전통의 선을 잘 살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지에 스며든 듯한 부드러운 색감이 원색적이고 화려한 외국 그림과 선명하게 비교되면서 우리의 맛을 살려 주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즉 한국적인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가는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할 만큼 텍스트 이해력이 뛰어나다.
그의 대표작『아씨방 일곱 동무』는 2001년 SBS 어린이 미디어 대상 창작 그림책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어와 일본어로도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씨방 일곱 동무』는 ‘규중칠우쟁론기’라는 고전문학을 아이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이다. 작가는 우리 고전을 되살려 그림책으로 만들어 정감있는 그림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
그 외에도 이영경은 많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지금도 아름답고 재미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는 『아씨방 일곱 동무』와 『신기한 그림족자』가 있고, 그린 책으로는 『넉 점 반』,『꽃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윤봉길』, 『전우치전』등이 있다
[책을 펴내며] 선사들의 깨달음을 넘어 나의 깨달음으로
1장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누가 그러던대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좌선해서 성불하는가
창청창청
아무 공덕도 없소이다
네 마음을 내놓아라
무거운 죄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사주팔자를 고치는 마음의 원리
2장 | 나를 아는가
목불에 무슨 사리가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모래로 밥하면
소똥은 신성한가, 더러운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스승과 제자는 철천지원수
거꾸로 쥔 바가지
진짜 아닐 때‘예’하는 마음
3장 | 자기를 돌아보라
보덕각시 이야기
결국은 자기 생각
남편 부처님, 아내 부처님
다른 절로 가보시오
삶에서 깨닫기
속고도 모르구나
4장 | 수행의 힘을 키우라
안 믿으면 되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이 뭣고
청천벽력의 의문
저 너머
모르는 줄 아는가
5장 | 삶 속에서 공부하라
깨끗함과 더러움, 둘 아닌 깨달음
중생을 외면하다
중생 속 중생
걸림 없는 삶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깨달음은 찾아온다
참 좋은 기회
사랑이 미움이 되는 순간
6장 | 탑 앞의 소나무가 되어라
탑 앞의 소나무가 되어라
나를 움켜쥐고
아무개야, 깨어 있느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남 탓할 필요 없다
7장 | 이미 일어난 일을 자기 삶에 유용하게 만들라
죽음의 고통과 불살생의 계율
진정한 이해
있는 그대로의 세상
현재는 과거 인연의 총합
선택과 책임
받아들임의 원리
자기를 아끼고 남도 아끼는 삶
[책을 접으며] 어떻게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것인가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 속 법륜 스님의 수행담
저는 당시 법문 하면 항상 산중 불교를 탈피해서 생활 불교를 하자, 고통 받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살피자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법문은 매일 그렇게 하면서 정작 그런 사람이 왔는데 빨리 내쫓을 궁리만 한 것이었어요. 이런 모순이 제 속에 있는 줄을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오라고 해서 왔다면서 꺼내놓는 홍보지를 봤을 때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홍보지를 딱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진 겁니다. 나라는 인간이 진실성이 없구나, 한 마디로 말하면 이중인격인데 이 이중인격으로 남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지금껏 속이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그 사람이 가고 난 뒤에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여러분도 살면서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자식 중 누가 죽거나 돈에 의지하다가 부도나면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가족, 재산을 다 버리고 오로지 부처님 법에만 의지하고 살아왔어요. 그러면서 내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인 양 목에 힘주고 살았는데 그 자체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니까 정신이 멍해져 버린 거예요. 비유하자면 부모 형제 자식이 한꺼번에 갑자기 죽었는데 부도까지 나서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이 멍해졌어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것이 없고 귀가 있어도 들리는 것이 없고, 말은 해도 공허한 거예요.
_ ‘다른 절로 가보시오’ 중에서
미국에서 처음 뵙게 된 한 노스님 앞에서 기존 불교에 대해서 막 비판을 하고 불만을 토로했어요. 두 시간쯤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노스님이 제 말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일세. 그 곳이 절이야. 그게 바로 불교라네.”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저는 머리 깎고 가사장삼 입은 사람을 중이라고 생각했지 마음이 청정한 사람을 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와집이 절이라고 생각했지 수행자가 앉아 있는 곳이 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불교라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머리 깎고 가사장삼 입은 사람이 스님이라고 생각하고 기와집이 절이라고 생각하고 이게 불교라고 생각하니까 불교가 지금 잘못 되었느니, 고쳐야 되느니 어쩌니 난리를 피웠는데 이게 불교가 아니라는 거예요. 마치 허공에 헛꽃을 꺾으려는 것과 같이 헛된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애초에 꽃이 없는데 꽃이 있다고 착각해서 그 꽃을 꺾으려 든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헛된 노력에 불과합니다. 불교 아닌 것을 불교라고 생각해 그걸 뜯어고치려 드니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쉽게 말하자면 지금 망상에 빠져가지고 헛짓거리하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 거예요. 이런 것이 깨달음입니다.
_ ‘탑 앞의 소나무가 되라’ 중에서
부목 생활하면서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일 열심히 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었어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에 집착하는 나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보겠답시고 들어갔는데, 그 열심히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포교하던 것을 장작 패는 것으로, 염불 하던 것을 밭고랑 매는 것으로 바꾸어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본 카르마karma, 습관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업식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죽기살기로 장작을 패고 있었어요.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조실스님께서 보고 계셨어요. 인사를 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보게, 자네가 오기 전에도 봉암사는 잘 있었다네.”
저는 마치 제가 없으면 봉암사가 안 될 것처럼 죽기살기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전에도 봉암사는 아무 탈 없이 잘 있었다는 겁니다. 스승님께서 보시기에 ‘너는 지금 일에 집착하고 있으니 그 집착을 놓으라’라고 일러주신 것이지요.
_ ‘나를 움켜쥐고’ 중에서
제가 개구리를 잡을 때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어요. 살려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었고 그게 무슨 큰 죄가 되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정작 내가 개구리 신세가 되고 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문 좀 할 수도 있지, 나쁜 짓 했으면 좀 맞아야지 이런 말이 절대로 안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교를 믿고 공부한 지 10년이나 되고 불교를 남한테 가르치기까지 하면서도 부처님 법을 온전히 그대로 안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갸우뚱거리다가, 결국은 내가 개구리 신세가 되어서야 이것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할 문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도 얼마나 어두웠습니까. 부처님 법까지도 내 식대로 받아들이고 내 마음에 안 들면 토를 달잖아요. 그 때 제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_ ‘죽음의 고통과 불살생의 계율’ 중에서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 속으로
“혼자 있으면 혼자여서 좋고, 둘이 살면 둘이 살아서 좋고, 애가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어서 좋습니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서 “아이고, 이 돌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질까.” 하면서 호미를 가져와서 돌멩이를 뽑아버리세요. 그러면 오늘 걸려서 넘어진 것이 잘 넘어진 것이 됩니다. 안 넘어졌으면 그 돌멩이를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넘어진 것이 도리어 복이 되었어요. 이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합니다.”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허우적대지 말고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주워보세요.
어차피 장가 간 김에, 어차피 자식 낳은 김에, 어차피 부도난 김에, 어차피 암에 걸린 김에, 어차피 늙은 김에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늙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 병이 났을 때만 할 수 있는 일, 이혼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 배신당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토했을 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토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면서 왜 못 깨치느냐 물으면 “아직 해골바가지 물을 못 마셨어요. 요새는 무덤이 없잖아요. 무덤이 있으면 저도 들어갈래요.” 이럽니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어요.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못 알아차리느냐에 따라서 세세생생 육도를 윤회하며 헤맬 수도 있고 단박에 깨달아 해탈할 수도 있습니다.”
“부부 관계나 부모자식 관계나 친구 관계나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나 정치인들 싸움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모두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결국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자기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는 것, 다시 말해 아상 때문에 세상이 서로 부딪히고 미워하고 괴롭고 증오하는 거예요. 그걸 내려놓게 되면 세상에 다툴 일이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갈등을 일으키기는커녕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오히려 풍요로워집니다.”
“우리는 늘 현재의 자기 직분을 놓칩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러 와 놓고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러 왔는데 그걸 방임하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준 사람을 욕하기도 합니다. 현재, 여기, 왜, 이 세 가지에 늘 깨어 있으면 삶에 후회라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에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