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해준 정신적 스승, 서암 스님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
젊은 시절, 불교계의 현실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법륜 스님은 1980년대 미국 LA의 작은 사찰에서 노스님 한 분을 만난다. 법륜 스님은 노스님의 이야기에 불교 운동이라는 이름에 매몰되어 있던 자신의 삶을 각성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노스님이 바로 제8대 조계종 종정이며 한국 최고의 선승이신 서암 큰스님이었다.
전 조계종 종정, 한국 최고의 수도선원인 봉암사 조실 등 서암 큰스님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서암 큰스님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마디는 자유와 원칙이다. 일본 유학시절 중증 폐결핵 진단을 받고 귀국한 서암 큰스님은 처음 출가하셨던 김용사에서 마지막 삶을 다한다는 각오로 용맹정진하셨다. 용맹정진하던 스님은 ‘생명, 그것은 곧 마음이니, 내 마음 밖에 죽고 사는 문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의 육신을 보며 깨닫는다. 이후 스님께서는 평생 하나의 원칙을 지니고 살아갔다.
그 원칙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더라도 불법에 맞게 수행하는 자세로 하면 산속에서 정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산속에 앉아 홀로 정진하더라도 뭇 중생의 고통을 잊지 않으면 자비 실천에서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으로 세상과 종단 그리고 여러 불자들이 원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맡아 사심 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주어진 직무를 제대로 해나갈 환경이 되지 못할 때는 아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내던지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왔다.
해방 후 경북 종무원장 시절부터 조계종 총무원장, 원로회의 의장, 종정에 이르기까지 스님은 이 원칙에 벗어나지 않게 직책을 맡고 또 미련 없이 내려놓고 사문으로 돌아오셨다. 불교의 근본원칙 하나를 갖고 스님은 문중, 역할, 종단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인 그 자체로 평생을 살다 가셨다.
불교란 꿈 깨라는 그 한 소리
“한 생각 꿈 깨는 것이 견성이지요. 견성하고 보면 본시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허무한 것임을 알 때 모든 것이 한없이 기멸해도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지 않게 되지요. 불교는 이 생각 하나만 바로 보라는 가르침입니다.”(154쪽)
신간 《꿈을 깨면 내가 부처》에서 서암 스님은 꿈 깨는 것이 불교라고 강조한다. 우리 중생은 업과 욕구에 끌려 멋대로 살고 있고, 자기 몸을 자기가 가두듯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세계를 가둬놓고 있다며, 그것을 탁 터버리면 육체와는 상관없는 자기가 없는 본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허공에 비행기가 날고 새도 날고 구름도 뜨고 번개가 쳐도 그 허공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습니까? 이처럼 본시 상처받을 수 없는 자리가 우리의 본체 이 마음자리인 것을 모르고, 제 스스로 착각을 일으켜 상처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무명만 거두어버리면 우리 마음은 형단이 없으니 상처받을 곳이 없어요. 형단이 없는 이 마음을 누가 구속하고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155쪽)
우리의 본래 마음은 몸을 받기 전부터 있었고 나고 죽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생긴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 무시무종한 것이라며, 모든 게 끊어진 그 자리는 그렇게 밝아서 꿈을 깨면 환한 우주 전체가 바로 자기임을 알 수 있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마음 하나 밝히면 극락
“불교는 마음 하나 깨치는 것뿐입니다. 마음을 밝히면 모든 것이 다 밝아집니다. 마음 하나가 팔만사천의 문제요, 우주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 마음 하나 알면 우주 전체를 압니다. 하나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42쪽)
스님은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귀신도 도깨비도, 천당도 지옥도 모두 내 마음에서 짜낸 그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한번 밝혀놓으면 온갖 나쁜 세계가 다 벗어진다는 것이다. 지옥이니 축생이니 하는 것도 모두 탐진치 삼독의 컴컴한 그림자에 가린 세계이기 때문에, 마음 하나만 밝히면 온갖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마음 한 점만 밝혀내면 우주 전체가 밝혀지지요. 마음을 정돈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파도에 흔들리고 떠내려가는 것이 삼계윤회입니다. 그 생각 하나 쉬어버리면 떠내려가지 않고, 본래 자기를 알면 걱정거리가 없어요. 그것이 불교입니다. 자기라는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불교입니다.”(54-55쪽)
수행자는 오욕락을 털어버리는 용기를 내야
스님은 중생들이 오욕락(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에 파묻혀 정신없이 헤매고 있다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 몸뚱이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해 살고 있다고 일갈한다.
“백 년 안쪽으로 살아가는 이 육체를 자기인 줄 잘못 알고 온갖 향락을 다하며 그 오욕락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남도 괴롭힙니다. 육체를 근본으로 삼으니 과거의 전생 다생한 영원한 자기 생명력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육 척 단구의 몸이 자기 전체인 줄 알고 거기에만 매달리다가 나자빠지면 정신없어 하지요.”(306쪽)
인간의 오욕락은 목마를 때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만족이 없다며,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오욕락을 털어버리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우리는 이러한 백 년 인생을 목표로 사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자기 생명을 가지고 나고 죽는 고통의 그물을 끊어버리자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또 백 년을 살아도 바른 가르침으로 살 때 행복한 것이지 그걸 모르고 욕망에만 빠져 살면 그 백 년 인생도 점점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지요.”(307-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