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참여불교의 거장 술락 시바락사의 핵심 사상서
원서 : The WISDOM Of Sustainability
-Buddhist Economics for the 21st Century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한 길
자연과 인류에게 모두 이로운 길을 찾아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환경에 대한 통제력 역시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발전한 과학기술만큼, 늘어난 물질적 부만큼 우리의 행복 역시 신장되었는가.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답변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경제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으며 자연환경은 회복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위태로울 정도로 파괴되고 있다.
세계적 불교 석학이자 사회활동가인 술락 시바락사의 문제의식과 실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현 세계가 ‘경제개발’이라는 이념에 취해 있고, ‘소비주의’라는 종교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벌려 애쓰고,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소비를 자극하는 현재의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 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그는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불평등과 환경파괴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며, 끝이 파멸인 줄도 모르고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멈추어 보라고 간곡히 말한다.
왜 불교경제학인가
불교의 근원은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 붓다의 문제의식중 하나는 왜 한 생명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쳐야 하는가였다. 너와 내가 모두 행복할 수는 없을까, 자연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며 번영할 수는 없을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파괴와 착취가 자행된다면 발전을, 기술을, 경제를 다시 봐야 한다. 진정 인간을 위한 것으로, 생명을 위한 것으로, 자연과의 공존공영을 위한 것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불교경제학이다. 돈의 흐름과 숫자 싸움에 빠진 경제학 말고, 인간을 위한 경제학, 생명을 살리는 경제학, 행복의 디딤돌이 되는 경제학을 창조해야 한다. 저자가 불교경제학을 말하는 이유이고, 근원적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이다.
불교경제학이 무엇인지는 그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경제학자 E.F. 슈마허의 다음 말로 유추해볼 수 있다.
“불교경제학의 핵심은 단순성과 비폭력이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불교식 생활방식의 경이로움은 그 완전한 합리성에 있다. 지극히 적은 투자로 엄청나게 만족스런 결과를 끌어내지 않는가.”
그렇게 불교경제학은 삶의 방법론이 된다. 먼 데서 해결책을 찾을 일이 아니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기대고 책임을 돌릴 일도 아니다. 나의 깨달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개선이 개인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연기적이고 순환적인 발전을 그는 이야기한다.
자칫 문제제기만 잔뜩 늘어놓거나 비판에 그칠 수 있는 주제들이 단숨에 나의 실천과제로 전환되고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천하는 삶
술락 시바락사는 평생을 행동주의로 일관하였다. 조국 태국의 군부독재에 맞서 오랜 기간 항거했으며,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는 왕실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비판을 제기해왔다. 또 서구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논리에 반대하며 앞장서 대안을 제시해 왔다. 붓다의 자비를 사회 속에서 실현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하고 일관되다. 명상과 자기수행만이 불교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져 있던 서구사회에 불교의 자비정신에 입각한 사회참여를 알린 것은 그의 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는 세계참여불교의 선구자이자 대두이다.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 불교단체와 활동가들에게 그가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소개는 오히려 늦되고 소극적인 감이 있다.
비록 빠른 현실 변화로 인해 책속에 소개된 사례들이 약간의 시차는 있으나 그의 첨예한 문제의식과 본질에 대한 통찰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실천적이다.
사회참여불교의 태두이자 사회비평가로 활동하는 술락 시바락사는 1933년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사원학교에서 전통교육을 받았고, 이후 영국에 유학하여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 법학을 공부했다.
정권의 부도덕함과 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다 여러 번 기소, 투옥되었으며 오랜 망명생활을 했다. 1963년 창간한 <사회과학비평>은 태국 군부독재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정치․사회 이슈를 제기하고 발언하며 앞서가는 지성지(誌) 역할을 하였다. 1976년 태국 유혈 쿠데타 이후 망명길에 올라 18년간 북미와 유럽에 머물면서 UC 버클리와 코넬 대학교, 토론토 대학교에서 방문교수를 지내며 활동가로서 활약을 이어갔다.
12개의 NGO를 창설하고 많은 출판물을 발행하면서 ‘평화와 비폭력, 정의와 인권’이 새로운 사회의 대안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으며 1989년에는 국제참여불교연대(INEB)를 설립하여 불교의 가르침으로 세상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
1995년 말에 대안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하였고, 주요 저술로는《사회변혁을 위한 불교적 대안》《아시아의 행동》⟪평화의 씨앗⟫⟪사회참여불교⟫를 비롯, 태국어와 영어로 백 권 이상의 책과 논문이 있다.
술락 시바락사는 명상․사색하는 삶과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삶이 서로를 비추고 가르치고 북돋울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왔으며, 80 중반의 나이에도 전 세계를 돌며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쉼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 세계는 변화를 요구한다
변화의 징후들 / 세계화는 자유시장 근본주의 / 사회구조가 구성원의 세계관을
규정한다 / 싯다르타 태자의 깨달음 / 나와 세계에 깨어있기
- 평화의 길, 생명의 길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 갈등은 치유와 성장의 발판 / 비폭력의 힘 /
갈등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법 / 고통을 해결하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 아래로부터의 발전
근대화가 불러온 비극 /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의 실상 / 변화의 시작은 가치의 자각으로부터 / 근대화 발전모델의 실패 / 발전의 두 얼굴 / 인간을 위한 경제 / 불교적 발전을 제안함 / 전체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전체
- 교육에 던지는 근원적 질문
허위의 전파자가 되어버린 교육 / 정립된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다 / 문화적 뿌리의 재발견 / 경제성장 제일주의와 학교 / 머리와 가슴이 만나게 하라 /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정치는 힘이 세다
죽은 정치냐, 희망의 정치냐 / 불교 민주주의 / 도덕적인 통치 /
‘국민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 / 해와 달과 별들이 제 갈 길을 가듯이
- 진정한 변화
개인의 해방과 사회적 해방은 동전의 양면 / 우리는 모두 상호 의존하는 존재들 / 불평등, 갈등, 그리고 폭력 / 대안을 찾아 나서다 / 국제참여불교연대의 창립 / 세계의 미래는 모든 존재의 평화 위에
- 변화하는 세계와 불교
불평등의 심화가 위기를 부른다 / 세계의 고통을 감소시킬 붓다의 가르침 /
도반은 신성한 삶의 전부 / 실천하는 정신 : 나로부터 사회로
- 평화의 호흡
종교는 사회변혁의 중심이고, 사회변혁은 종교의 정수이다 /
불교의 시작은 공감과 연민 / 붓다는 깨달음이다 / 평화의 호흡
불교도로서, 나는 비교우위라는 부당한 명제가 사회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의 관심사는 사회 조직이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고, 정의를 진작하고,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p.54
타이의 시골 마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불성, 즉 깨달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믿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위엄을 갖습니다. 권력과 경제의 지방분권화는 영혼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기초이기도 한 셈입니다. p.56
원조 기구들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구조를 재평가하여 개방을 확대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 기구가 스스로를 재평가함으로써 개발도상국의 발전 과정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인구 천 명 당 의사의 숫자라든지 1인당 GDP처럼 순전히 양적 분석에 기반한 정책 구상과 평가는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지원 조직과 수혜자 간에 문화정체성과 사회다양성을 존중하는 공통 언어를 찾아야만 합니다. p.60
발전은 양을 강조할 수도, 질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양에 초점을 맞추면 결과를 측정하는 데는 용이하겠지요. 그러나 더 많은 공장과 학교, 병원, 음식, 옷, 일자리 혹은 소득이 곧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리라는 생각은 잘못된 기대입니다. 이 모두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 이상을 원하고 찾아 나서며, 자기 잠재력의 최대치를 실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이며 신성(神性)과 관련됩니다. 발전이란 우리 인간의 본질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p.62
불교경제학의 핵심은 단순성과 비폭력이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불교식 생활방식의 경이로움은 그 완전한 합리성에 있다. 지극히 적은 투자로 엄청나게 만족스런 결과를 끌어내지 않는가. p. 64
불교의 교육은 인간의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본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른 생명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니는가? 불교는 교육과 삶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p.72
오늘날의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관’입니다. 대학은 현실의 문제와는 동떨어져 행진하는 경제 합리주의자들의 군대를 양산합니다. 그들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을 추구한다면서, 정말 필요한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들을 간과합니다. 대학의 목적은 자유로운 학문 추구라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지만, 거대 학문에 대한 거대 투자는 어마어마한 사업입니다. p.73
지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호 연관돼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란 편견이나 고집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현상을 이해함을 말합니다. 지혜를 얻으면 이는 곧 자비와 통하며, 타인을 돕는 일이 나의 영원한 사명이 됩니다. p.77
불교 민주주의에서 좋은 통치는 연민과 비폭력에 뿌리를 두며, 인간애의 공유와 모든 지각 있는 존재의 상호연관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비폭력은 우리 모두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낯선 이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p.105
정치와 경제 제도를 다시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해방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개인의 변화가 우선입니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평화로울 때에만 그 사회에 평화가 자리 잡습니다. 탐․진․치가 우리의 개인사를 점령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제도 역시 그것들에 점유당해 사회 변화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달렸습니다. 개인의 해방과 사회적 해방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우리는 억압적인 사회제도와 맞서는 동시에 스스로를 일구어야 합니다. p.114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인간성의 기본은 상호의존성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불명확성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윤리가 성립됩니다. 인간의 연약성이 윤리적 관계의 전제입니다. 명상을 하면, 더 이상 약육강식이 아닌 친절과 환대 쪽으로 마음 작용이 변해갑니다. 자기만의 성곽을 쌓아올려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p.117
활동가들과 세속 지식인들은 그들 내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지 못하고, 모든 악의가 상대방 혹은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사회공학으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사회만 완전히 새롭게 건설하면 개인의 미덕은 저절로 습득될 것처럼 접근합니다.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