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으라는 게 아니라 관점을 바꾸라는 거야
요즘 청춘은 더 이상 행복이나 성공을 위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저마다 답답한 현실에 오래 묵혀둔 질문을 들고 찾아온 청춘에게 법륜 스님은 정답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으니 삶을 바꾸려면 생각의 습관을 고쳐 관점을 바꾸어 보라고 권합니다. ‘지금의 나도 참 괜찮다, 관점을 달리해서 받아들이면 지금의 현실도 부족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반짝이는 햇살처럼 내 모습에 빛이 납니다. 막막한 현실 때문에 멀게만 보이던 행복이 이렇듯 가깝고 자연스러운 본연의 즐거움으로 성큼 다가옵니다.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청춘의 웃음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고 주변을 살리는 긍정 에너지이자 나아가 현실을 바꾸는 힘의 원천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5년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찾아온 청춘의 고민들 수백 건 중 공감이 높았던 이야기들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청년들의 주된 고민들인 자아존중감, 우울, 불안, 화, 인간관계, 사랑과 가족, 진로와 사회 이슈 들을 법륜 스님의 화법으로 풀어내어 담았습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묻고 답하는 대화 속에서 자기 문제를 스스로 자각하여 풀어가는‘장(場)’입니다. 대화는 질문자와 스님 두 분이 이어가지만, 어느 순간 청중과 스님이 화답하는 공감의 장이 되어 질문자뿐 아니라 함께 듣는 참가자의 고민도 해결이 됩니다. 이를 책이라는 정해진 형식과 분량에 맞추어 내용을 줄이고 다듬다 보니 현장의 감동과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질문의 내용에 성, 이념, 지역, 직업의 특성이 강하게 들어간 경우는 보편성과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정하였습니다.
지금 하는 것에 깨어있으라
법륜 스님은 책에서 실패와 실수는 당연한 것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내딛는 열 걸음 중 한 걸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몇 번의 넘어짐 또한 가볍게 받아들이고 지나갈 도전의 여정 중 한 고개일 뿐입니다.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으면 힘이 없습니다. 운동화 끈이 풀린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고쳐 매는 순간처럼, ‘지금, 여기, 나’에 오롯이 집중하면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어느덧 사라집니다. 매 순간 지금 하는 일에 깨어있다면 앞으로 나에게 닥치는 어떤 일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단단해지는 청춘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다는 것은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높고 크게 그려놓은 환상 속의 자기가 현실에 있는 자신을 보면 초라하고 한심스러워 실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고자 현실 속의 자신을 환상에 맞춰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중략)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길가에 핀 풀 한 포기와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말하면, 이 둘은 모순이고 정반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소중합니다. 길옆에 핀 풀 한 포기도, 숲에서 사는 다람쥐도, 사람도 다 소중한 존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의 존재가 길가의 풀 한 포기, 숲에서 사는 다람쥐 한 마리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서문 중에서
지금 여기 있으면서 오늘 마음먹고 내일 안 되고, 내일 마음먹고 모레 안 되면,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전역하면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해봤자 꿈같은 소리일 뿐입니다. 지금 할 일은 내가 처한 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거예요.
우리 인생의 문제는 밖의 누군가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습관, 내 사고의 습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는 없습니다. 하는 만큼 하고,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도 없어요.
마음이 들뜨지 않고 가라앉지 않고 고요한 것이 원래의 건강한 마음 상태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막 들뜨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행복만 추구하면 앞으로 인생이 오히려 고달파져요.
인간관계에서 알아야 할 점은 ‘사람은 다 고만고만하고 다 이기적’이라는 겁니다. 이기적이라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인간은 본래 이기적입니다. 내가 이기적인 줄 알아서 상대의 이기적인 면도 인정할 때, 인간관계가 원만해집니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귀합니다. 그저 ‘그것’일 뿐입니다. 잘나고 못난 것은 다 우리의 인식 체계에서 오는 거예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매일 밤마다 잠을 못 자서 약을 먹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은 ‘나는 남의 노예가 되고 싶다’는 것과 같습니다. 기쁨은 남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하는 실수들은 인생의 당연한 과정입니다. 열 개를 도전하면 아홉 개가 안되고 한 개가 되는 게 인생입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괴로움이 없는데, 여러분은 열 개 중에 아홉 개가 되고 한 개가 안 되는 걸로 생각하니까 항상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를 받으려고만 하잖아요.
질문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하찮게 만들어놓고 살고 있어요. 거기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더 좋게 만들려고 하는데, 그걸 욕심이라고 해요. 그러면 비굴하거나 교만해집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어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고, 신성한 것도 부정한 것도 없어요.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나를 사랑하라는 것은 현실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로 괜찮습니다. 설령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괜찮습니다. 자기 긍정의 바탕에서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자신을 바꿔 나가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자기 사랑의 시작입니다.
금 아닌 걸 ‘금 같다. 금만큼 좋아 보인다’고 하면 위로가 되고 칭찬도 되겠지만, 진짜 금한테 ‘금 아닌 것 같다’고 하면 금이 위축될까요, 안 될까요? 마찬가지로 질문자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 아무 위로가 필요 없어요.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돈과 권력이 있어도 겸손합니다. 자신이 가장 위대한 존재니까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죠.
‘그냥 한다’ 하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알람이 울리면 싹 일어나고,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어도 합니다. 좋고 싫고에 너무 구애받으면 안 됩니다. 좋고 싫다는 감정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되 동시에 자기 마음을 잘 살펴서 늘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해야 꾸준히 할 수 있고, 꾸준히 해야 변화가 일어나요.
이 상황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마냥 기다리거나 손실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돼요. 불리한 조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전환시킬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조건에 놓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또렷이 깨어있어서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는 주체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늘 우리 뜻과 상관없이 움직여요.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든 우리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효율적으로 쓰면 돼요.
중도란 ‘딱 가운데’가 아니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바른길로 가되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이론보다 연습이 더 필요합니다.
미래 사회에 제일 중요한 능력은 유연함입니다. 유연함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로움’입니다.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해탈’이에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사고의 유연함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과 달라도 내가 다른 방향으로 사는 게 좋으면 그렇게 살고, 흐름을 따라가고 싶으면 따르는 쪽을 선택해서 살면 됩니다. 어렵게 살지 말고 쉽게 사세요.
세 가지 관점을 지켜야 합니다. 저기가 아니고 여기, 그리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 남의 얘기 하지 말고 내 얘기 하세요. 지금, 여기, 나!
흔히 노동의 해방을 ‘노동시간은 적어지고 임금은 많이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노동의 놀이화’입니다.
창조의 길을 갈 때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실패가 바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때의 실패는 이기고 지는 승패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해 가는 하나의 연습 과정이에요.
물벌레와 개구리, 뱀 등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연못을 생각해봅시다. 개구리의 입장에서 보면 물벌레는 많을수록 좋고, 뱀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실제로 뱀이 죽으면 개구리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그러나 물벌레를 잡아먹는 양이 늘어난 끝에 더 이상 잡아먹을 물벌레가 없어지면 결국 개구리도 모두 죽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뱀의 존재가 실은 개구리를 살게 해 주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어떤 선택이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고, 내린 결정에 대한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돼요. 그러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우리 인생살이가 괴로운 이유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진다면 우리 삶은 훨씬 편안해집니다.
인정받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인정해 달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꼭두각시가 되어 달라는 말이잖아요.
욕망이 내재된 사랑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상대를 미워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이런 사랑은 좋은 만큼 괴로움이 뒤따르게 되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사랑이라고 포장하면 인생이 괴롭지만, 처음부터 장사라고 인정하면 문제될 게 없어요. 오히려 더 면밀하게 살피게 되고, 나중에 적자가 나도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니 상대를 미워할 필요가 없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의 한 면만 보고 판단하지만 사물에는 앞과 뒤, 좌와 우, 위와 아래 등 다양한 면이 있습니다. 그 전체를 다 볼 줄 알아야 나중에 어떤 결정을 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