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사자후
혼돈의 시대, 마음찾기의 나침반이 될 서암스님의 수행과 깨달음 이야기
서암 큰스님. 한국 최고의 선승禪僧. 한평생 수행자로만 살았다. 지리산 칠불암에서 도반들과 더불어 ‘공부하다 죽어도 좋다’고 서약하고 정진한 일화가 유명하다. 1978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어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시켜 엄격한 수행 가풍을 진작해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만들었다. 1993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재임 140일 만인 1994년 4월에 사임하고 종단을 떠났다.
평생을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했던 스님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생활선禪의 법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스님은 언제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셨다. 몸으로 실천했던 큰스님의 모습은 지금도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서암 큰스님의 회고록 ≪그대, 보지 못했는가≫는 서암 큰스님이 직접 구술한 내용을 이청 작가가 엮은 책이다. 서암 큰스님의 출가와 수행, 구도와 깨달음의 여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또 종단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종정사퇴’에 대한 큰스님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한국 최고의 선승禪僧.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살았다. 1978년 이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어 낙후된 가람을 전국의 납자 100여 명이 결제에 들 수 있도록 대작불사로 이끄는 한편,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엄격한 수행 기풍을 진작해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만들었다.
평생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했던 스님은 사부대중이 이해하기 위한 ‘생활 선의 법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났으며 법명은 홍근 鴻根. 법호는 서암西庵.
1993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재임 140일 만인 1994년 4월에 사임하고 종단을 떠났다. 2003년 3월 29일 세수 90세, 법랍 75세의 일기로 봉암사에서 입적하였고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1945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3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작가는 문학을 통하여 인간의 존재가 지닌 궁극적 가능성을 끝없이 모색해 오고 있으며 이러한 작가정신은 불교의 정신 세계를 천착하게 하였다. 서암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어 큰스님 열반 이후 ‘서암 불교’를 제자리에 세워놓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글을 써 오고 있다.
저서
<사바행>
<우리들의 초상>
<부처님 동네>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은어낚시>
<우리 옆에 왔던 부처>
<화두의 향기>
<이뭣고>
<제3 공화국 경제 비화>
<7번 국도를 걷다>
<마지막 풍수>
<대한민국 멸망>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르칠 수 없는 진리를 가르치고 나누는 것
제1장 한마디라도 네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나는 누구인가
기상을 죽이지 마라
죽음과의 첫 만남
육신의 굶주림과 마음의 굶주림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부터 너는 서악사의 머슴이다
김용사에서 출가와 수행
내 마음속의 갈증과 배고픔
일본 유학길
공부보다 생존이 절박했던 일본생활
나는 월급쟁이도 장사꾼도 아니었다
가난은 육체에 상처를 남기고
귀향
새로운 삶
다시얻은 생명 부활이다
청담스님, 성철스님 – 마지막 남은 비구들
청담스님 이야기
제2장 목숨을 걸고 길을 찾다
해방
불교청년운동
계룡산 토굴 속에서 여여한 마음을 보다
공부하다 죽을 각오로 시작한 칠불암 정진
계룡산에서 6·25를 만나다
한국전쟁 당시의 원적사
원적사에 모인 수좌들
도도한 법맥이 서려있는 원적사
탁발과 동냥으로 원적사 살림을 꾸리다
벌목의 위기로부터 천년고찰을 지켜내다
봉암사 재건을 위하여
양산박의 수좌들
수행자의 기상으로 가꾼 봉암사
산문출입을 막고 천년가람을 지키다
살아있는 봉암사의 선풍
제3장 잃어버린 붓다
한국 불교 근현대사의 중심, 비구
왜색불교의 척결과 정치권력의 결탁
정화불사의 아쉬움
경북불교를 위해 고생 좀 해 달라
문제는 사람이다
총무원장의 감투를 쓰고
조계사를 수행도량으로
10·27 법난은 부끄러운 일
성철스님을 종정으로 추대하다
법을 의지할지언정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조계종 8대 종정으로 취임
불교개혁을 시작하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을뿐
종정, 개혁의 대상이 되다
종정불신임과 종정사퇴
종정에서 자유인으로
자유인
제4장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이었나
마음을 쉬는 것이 참선이다
참선은 자유를 얻는 길
어머니 뱃속에 들기 이전에 그대의 생명은 어디 있었는가
출가수행자는 직업이 아니다
먼저 종단이 안정되고 올바른 지도력을 갖추어야
세속의 욕망은 산문밖에 벗어두고 오라
출가수행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우리 생명의 끝은 어디인가
열반은 생명이 본래 공空임을 깨닫는 것
부처와 중생의 씨앗은 다르지 않다
일천 칠백 공안이 어찌 그것뿐이랴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마음 깨치라는 한 가지 소리뿐
일본의 선禪
어떤 화두를 선택해 참구했는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화두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면 그것이 곧 부처
제5장 흔들리지 말고 살아라
신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신은 죽었다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중심의 근본진리
누가 인생을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삶을 행복으로 꽃피울 수 있는 사람
인간, 사회, 자연의 균형을 잃은 물질문명
불확실성의 시대
잃어버린 마음의 근본을 찾아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자기발견
참선,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말하다
몸이 생기기 전의 자기 면목
자기 삶의 주인이냐 도둑이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식
어떠한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너 자신을 의지하여 진리를 스승으로 삼으라
제6장 미국부처, 인도부처
종교 자유와 종교 이기주의
종교,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
아픈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미래 불교
승려의 세계는 투명해야 한다
불법은 펄펄 살아서 행동하며 흘러가는 것
계는 부처님 법을 담고 깨달음을 담는 그릇
수행자의 음식과 비룡스님의 벽곡
나는 음식을 가린 적이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이 밥을 받는 것은 도업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비구는 얻어먹는 사람
미국부처여, 자유를 찾으라
미국부처, 인도부처
따뜻한 남쪽나라, 거제도
제7장 마지막 대화
무위의 선승, 서암
거제도의 만남
언제 길을 갈 생각인가
회향하는 법
쑥국
감옥같은 선방, 선방같은 감옥
음식에 대한 욕구를 끊고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부처와 중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민물에 사는 고래
[이야기를 닫으며] 큰스님을 그립니다 _ 이청
서암 홍근 대종사 행장
법륜 스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해 준 정신적 스승, 서암 스님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
젊은 시절, 불교계의 현실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법륜 스님은 1980년대 미국의 LA의 작은 사찰에서 노스님 한 분을 만난다. 법륜 스님은 노스님의 이야기에 불교 운동이라는 이름에 매몰되어 있던 자신의 삶을 각성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노스님이 바로 제8대 조계종 종정이며 한국 최고의 선승이신 서암 큰스님이었다.
전 조계종 종정, 한국 최고의 수도선원인 봉암사 조실 등 서암 큰스님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서암 큰스님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는 자유와 원칙이다. 일본 유학시절 중증 폐결핵 진단을 받고 귀국한 서암 큰스님은 처음 출가하셨던 김용사에서 마지막 삶을 다한다는 각오로 용맹정진 하셨다. 용맹정진 하던 스님은 ‘생명, 그것은 곧 마음이니, 내 마음 밖에 죽고 사는 문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의 육신을 보며 깨닫는다. 이후 스님께서는 평생을 하나의 원칙을 지니고 살아갔다.
그 원칙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더라도 불법에 맞게 수행하는 자세로 하면 산속에서 정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산속에 앉아 홀로 정진하더라도 뭇 중생의 고통을 잊지 않으면 자비 실천에서 동떨어지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으로 세상과 종단 그리고 여러 불자들이 원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맡아 사심 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주어진 직무를 제대로 해나갈 환경이 되지 못할 때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 ‘자리’를 내던지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왔다. 해방 후 경북 종무원장 시절부터 조계종 총무원장, 원로회의 의장, 종정에 이르기까지 스님은 이 원칙에 벗어나지 않게 직책을 맡고 또 미련 없이 내려놓고 사문으로 돌아오시기를 반복했다. 불교의 근본원칙 하나를 갖고 스님은 문중, 역할, 종단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인 그 자체로 평생을 살다가셨다.
생활 선禪, 내 마음을 찾는 법
평생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했던 스님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생활선의 법문’ 으로 알려져있다. 선에 있어서도 생활 속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선이란 것은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손 움직이고 발 움직이고 울고 웃고 이웃 간에 대화하는 그 속에서 24시간 내 모습을 온전히 찾아가는 것, 그것이 생활선” 이라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항상 바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정작 현재의 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본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불교는 마음의 정체를 밝히며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닫는 방법을 선禪이라고 했다. 그래서 출가승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선이다. 그리고 선은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라고 말한다. 혼돈과 고통으로 얼룩진 정신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자기 본래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참선이고 생활선이라 하셨다.
종단분규, 종정 탈퇴와 탈종 그 오해와 진실
서암 스님은 해방이후 왜색화된 한국불교를 정화한다는 목적으로 불러들였던 폭력이 오늘날까지 불교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대의와 명분은 옳았어도 그 방식이 문제라면 불교적 입장에서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꼭 물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단식이든 집회든 다중의 힘을 과시하여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폭력이며 폭력적인 해결방법은 세속의 방식이고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 스님의 뜻이었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대중의 힘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부정하고 막으려 했다. 대중들은 내편 ․네편으로 나눠 대중의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서암 스님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오해와 더불어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갔다. 비불교적인 방법에 대해 불교적인 원칙을 제시하며 서암스님은 종정을 사퇴하고 종단밖으로 나갔다.
일련의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잘못 평가되고 왜곡되는 부분에 있어서 서암 큰스님 열반 10주기를 맞는 지금, 서암 스님의 종정사퇴와 탈종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수행자로써 최대의 명예로움으로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갔다고 해라
열반에 들기 전 시봉하던 제자들이 스님께 한 말씀 해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자 스님께서 한마디 했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게송도 아니고 법문도 아닌,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 그러나 부처님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불교 전체를 아우르고 질타한, 가장 불교적인 한마디였다.
무언가 드높고 복잡 미묘한 경지를 이르면 가치롭게 여기는 풍토에서 스님의 담백한 한 말씀은 이런 세태를 꼬집어주는 것만 같다.
서암 큰스님 열반 10주기를 맞아 큰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하는 이유는 삶이 풍요로워지면서도 정신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청량수와 같은 시원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검소한 삶과 깨달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